12월 31일 밤. 한국에서는 보신각 종소리를 기다리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것을 기다린다. 연말 점보 복권의 추첨 결과다. 1등과 전후상을 합치면 10억 엔이 한 장의 종이에 걸려 있다.
일본어로 복권은 타카라쿠지(宝くじ). 직역하면 '보물 제비'다. 1945년 종전 직후 처음 발매됐으니 올해로 81년째.
한국도 로또 6/45 외에 연금복권이나 스피또 같은 즉석복권이 있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로또에 쏠려 있다. 일본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시즌마다 나오는 점보 복권, 직접 번호를 고르는 로또 계열, 평일 매일 추첨하는 넘버즈, 즉석 스크래치까지 종류별로 수요가 나뉘어 있다. 공식 사이트 기준으로 점보·로또7·로또6·미니로토·빙고5·넘버즈4·넘버즈3·스크래치 등이 판매 중이다.
점보 복권, 시즌마다 돌아오는 국민 행사
가장 유명한 건 점보 복권이다. 연 5회 발매되며 시즌마다 이름이 다르다.
바렌타인 점보가 2~3월에 나오고 드림 점보가 4~5월, 서머 점보가 7~8월, 할로윈 점보가 9~10월에 판매된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11~12월의 연말 점보. 1장에 300엔이다.
시즌별 1등 당첨금은 해마다 바뀐다. 2025년 연말 점보의 경우 1등이 7억 엔이었고 서머 점보는 5억 엔이었다. 고정 금액이 아니라 회차마다 공식 발표를 확인해야 한다.
점보 복권에는 전후상(前後賞)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1등 당첨 번호 바로 앞뒤 번호에도 각각 1억5000만 엔이 돌아간다. 2025년 연말 점보 기준으로 1등 7억 엔에 전후상 3억 엔을 더하면 합계 10억 엔. 연속 번호로 사면 전후상까지 노릴 수 있다는 계산에 10장, 20장씩 연번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
번호를 직접 고르는 로또 계열
한국 로또처럼 본인이 번호를 선택하는 방식도 있다.
로또7은 1부터 37까지 숫자 중 7개를 고른다. 매주 금요일 추첨이고 1장에 300엔. 2025년 2월 상금 체계 개정 이후 1등 이론 당첨금이 7억 엔으로 올랐다. 당첨자가 없으면 이월되고 캐리오버 상한은 12억 엔. 당첨 확률은 약 1029만분의 1이다.
로또6는 1부터 43까지에서 6개를 고른다. 한국 로또와 가장 비슷한 형태다. 월요일과 목요일 주 2회 추첨에 1장 200엔. 1등은 이론값 2억 엔이고 캐리오버 시 최대 6억 엔까지 쌓인다. 확률은 약 609만분의 1.
미니로토는 1~31에서 5개를 고르고 화요일에 추첨한다. 200엔. 1등 이론 당첨금은 약 1000만 엔으로 규모는 작지만 확률이 약 17만분의 1이라 당첨 체감이 훨씬 가깝다. 캐리오버는 없다.
매일 결과가 나오는 넘버즈
평일이면 매일 추첨이 돌아가는 게임도 있다.
넘버즈4는 네 자리 숫자를 맞히는 방식이다. 1장 200엔. 공식 사이트는 스트레이트(순서까지 일치) 이론 당첨금을 약 100만 엔으로 안내한다. 넘버즈3는 세 자리 버전으로 스트레이트 이론값 약 10만 엔. 둘 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추첨한다.
빙고5는 좀 독특하다. 3x3 격자에 숫자를 배치해서 빙고 라인을 맞히는 형식이다. 수요일 추첨에 200엔, 1등 이론 당첨금은 약 555만 엔.
스크래치는 즉석 복권이다. 100엔짜리부터 500엔짜리까지 있고 그 자리에서 동전으로 긁으면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 테마가 수시로 바뀌어서 게임성이 있다.
당첨되면 세금이 없다
한국 로또 1등에 붙는 세금은 33%(3억 원 초과분 기준). 20억 원을 받으면 실수령은 약 14억 원이다.
일본은 다르다. 당첨금부증표법(当せん金付証票法) 제13조에 따라 복권 당첨금에는 소득세가 붙지 않는다. 10억 엔을 받으면 10억 엔 그대로 가져간다.
그 대신 복권 매출 자체에서 당첨금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높지 않다. 2024년도(令和6年度) 실적 기준으로 당첨금 비율은 46.5%이고 지방자치단체 수익금이 36.2%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인쇄비와 판매 수수료 등이다. 구매 시점에 이미 세금이 포함돼 있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외국인도 일본 체류 중 판매점에서 현금으로 복권을 살 수 있다. 별도 신분증 확인은 없다. 다만 공식 사이트 온라인 구매는 일본 국내 거주자만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공식 사이트 표현으로는 '일본 국외에 거주하는 분은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로 안내하고 있다. 인터넷 판매는 2018년 10월에 시작됐다.
복권의 날과 연말 풍경
일본에는 '복권의 날'이 있다. 9월 2일인데 일본어로 9(く)와 2(じ)를 합치면 '쿠지' 즉 복권이라는 말장난에서 왔다. 1967년에 제정됐다.
이날에는 꽝 복권 대상 추첨을 한 번 더 한다. 공식 명칭은 'お楽しみ抽せん(오타노시미 추첨)'. 꽝을 버리지 않고 모아둬야 하는 셈이다. 당첨 상품은 가전제품이나 타카라쿠지 포인트 같은 것인데 이 행사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연말 점보 시즌이 되면 유명 판매점 앞에 긴 줄이 생긴다. 도쿄 긴자의 '니시긴자 찬스센터'는 역대 1등 배출이 많기로 알려져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한국에서 로또 명당이라며 특정 판매점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심리다.
300엔짜리 종이 한 장에 거는 마음은 어디나 비슷하다. 로또7 추첨이 있는 금요일 저녁이든 연말 점보 결과가 나오는 12월 31일 밤이든 당첨 번호를 기다리는 그 감각은 한국 토요일 저녁과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