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 절반이 망한다는 말, 출처를 추적해봤다
한 통계가 한국 인터넷을 십 년째 떠돌고 있다.
"로또 1등 당첨자의 44퍼센트가 5년 안에 파산한다."
70퍼센트로 적힌 글도 있고, 50퍼센트로 적힌 글도 있다. 출처는 늘 같다. NEFE. 미국 국립금융교육재단의 연구라고 한다. 같은 통계가 신문, 유튜브, 블로그를 거치며 숫자만 바뀌고 출처는 그대로다.
그래서 NEFE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NEFE는 그런 통계를 발표한 적이 없다
NEFE는 1972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금융교육 단체다. 자료실, 연구 보고서, 보도자료가 모두 공개돼 있다. 어디에도 "복권 당첨자 N퍼센트가 5년 안에 파산한다"는 문장은 없다. 검색해도 안 나온다.
NEFE 본부는 이 인용이 자신들에게 잘못 귀속된 것이라고 여러 차례 부인해왔다. 미국 매체들의 팩트체크 보도들이 그 부인을 받아 적었다. 그래도 인용은 줄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처음 만든 말인가. 인터넷 인용을 거꾸로 따라가면 2010년대 초의 미국과 영국 타블로이드, 자기계발서가 나온다. 그 이전 출처는 점점 흐려지고 마지막엔 "한 연구에 따르면"이라고 적어 놓은 페이지에서 끊긴다. 도시전설의 표본 같은 패턴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인용은 출처를 따라갈수록 흐려진다. 마지막엔 누군가 "한 연구에 따르면"이라고 적어 둔 페이지에서 끊긴다.
진짜 연구는 따로 있다
대신 진짜 학술 연구는 있다. 밴더빌트 대학과 켄터키 대학의 연구자 셋, 행킨스, 호크스트라, 스키바가 2011년에 한 작업이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플로리다 복권에서 5만~15만 달러를 당첨받은 약 35,000명을 5년 동안 추적했다. 그 사이 누가 파산을 신청했는지 법원 기록으로 확인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큰 당첨금을 받은 사람들은 받은 직후 2년 동안 파산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3~5년 사이가 되면 비당첨자보다 더 많이 파산한다. 5년 누적으로 보면 비당첨자보다 약 50퍼센트 정도 더 높은 파산률이 나왔다. 일반인 4퍼센트가 파산한다면 큰 당첨자는 약 6퍼센트가 파산한다는 그림이다.
연구자들의 결론은 단순했다. 당첨금은 파산을 막는 것이 아니라 늦췄다. 그 이상은 못한다.
논문 제목 자체가 결론을 암시한다. 「The Ticket to Easy Street? The Financial Consequences of Winning the Lottery」. "쉬운 길로 가는 표"라는 통념에 물음표를 붙이고 시작한다.
절반이 망한다는 그림은 어디에도 없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그림은 이렇다. 복권 당첨자가 일반인보다 더 자주 파산하기는 한다. 약 1.5배. 그러나 절반이 망한다거나 70퍼센트가 망한다는 그림은 어디에도 없다.
44도 70도 아니다.
스웨덴은 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 데이터를 가진 연구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경제학교의 린드크비스트, 외스틀링, 세사리니가 2020년에 발표한 결과다. 스웨덴 복권 당첨자 약 3,000명을 장기 추적했다. 당첨 직후가 아니라 5년에서 22년에 이르는 장기 영향을 본 연구다.
당첨자들은 비당첨자에 비해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가 일관되게 높았다. 정신 건강 지표도 나빠지지 않았다. 금융 자산은 늘었고, 소비도 안정적이었다. 갑자기 돈이 들어왔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없었다.
미국 행킨스 결과와 모순되지 않는다. 두 연구가 같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평균은 망하지 않는다. 길게 보면 오히려 행복해진다.
그래도 우리는 망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물론 평균이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에 도시전설이 자리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진짜로 망한 사람들이 있고, 그 이야기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포스트라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평범한 남자가 1988년 1620만 달러에 당첨됐다. 1년 만에 빚더미에 앉았다. 형제가 청부살인을 시도했고, 친척들에게 빌려준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식당과 비행기를 사들였다 망했다. 사망할 때 포스트는 사회복지수당으로 한 달에 450달러를 받고 있었다.
잭 휘태커는 2002년 미국 사상 당시 최대 단일 당첨금이었던 3억1500만 달러를 받았다. 몇 년이 지나는 사이 가족이 비극을 겪었고, 휘태커 본인은 절도와 음주운전으로 여러 차례 기소됐다. 차량에 두었던 50만 달러가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했다.
평범하게 잘 사는 당첨자 999명의 이야기는 기사가 되지 않는다. 망한 한 명의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묶인다.
이런 이야기는 강렬하다. 매체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기억한다. 평균 5.5퍼센트 같은 숫자는 머릿속에 안 남지만, 1620만 달러를 받고 1년 만에 빚더미에 앉은 사람은 안 잊힌다.
평범하게 잘 사는 당첨자 999명은 기사가 되지 않는다. 망한 한 명이 책 한 권으로 묶인다. 우리가 본 것은 표본이 아니라 추출된 사례다.
한국에서는
한국에 같은 종류의 학술 추적은 없다. 동행복권은 매년 1등 당첨자 인터뷰를 일부 공개한다. 익명이지만 직장과 가족 형태, 수령 후 계획까지 듣는다. 그 인터뷰들을 모아 보면 보통 사람들이다. 빚을 갚고, 집을 사고,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비극으로 끝난 한국 1등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익명 처리되는 시스템 때문에 표본을 모아 통계를 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로또 1등의 절반이 망한다"는 주장이 통계로 검증된 적은 없다.
우리는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를 믿어왔다
"1등이 인생을 망친다"는 서사는 매혹적이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부자가 되면 무서운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그 욕망을 정당화해준다. 우리가 매주 5천원을 잃어도 "운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자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당화의 근거가 NEFE 발표라는 가짜 출처고, 진짜 연구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복권 당첨이 천국이라는 말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연구들은 평균이 망하지도 않지만, 인생이 극적으로 좋아지지도 않는다는 쪽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준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같은 일상이 자산만 늘어난 채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음에 누군가가 "44퍼센트가 망한대"라고 말하면 한 번 물어보자. 어디서 봤어. 그 자리에서 답이 안 나오면, 아마 NEFE에서 본 것이 아닐 것이다.